역사관

우리의 미래 철강이 만들어 갑니다.

한반도 철의 역사

철은 오랜 옛날부터 독특한 성질과 인류가 사용해 온 역사성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서 수많은 상징성을 부여받아 왔습니다.

조선시대 철 활자

철은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강한 성질 때문에 강직함이나 철옹성과 같은 견고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철은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철로 만든 무기는 구리보다 뛰어났고, 쉽게 무뎌지는 청동기보다 강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였습니다.

철은 비록 녹이 잘 슬어 장신구로 활용되지는 않았지만, 각 국의 지배자들에게는 더 없이 매력적인 소재였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철을 소유한 국가는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시대를 호령하였으며, 이를 통해 찬란한 문화를 일궈 내게 됩니다.

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한반도 철기시대의 시작 (철기의 유입 및 확산)

비파형동검 (청동기)
철검 (초기 철기)

우리나라의 철기문화는 중국 전국시대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초기에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주조도끼를 위시한 농공구류가 대량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철기문화가 본격적인 자체생산 및 원재료 수출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을 전후한 무렵으로 이때부터는 단조철기가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며, 철기 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사회통합이 가속화되어 최초의 고대국가인 위만조선이 등장하였습니다.
한반도 철기 문화의 시작과 전개는 당시 선진지역인 중국 동북지역의 우수한 철기 문화의 수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쇠화살촉 (낙랑)
쇠거울 (낙랑)

한반도 철기 문화의 시작과 전개는 당시 선진지역인 중국 동북지역의 우수한 철기 문화의 수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반도 내 초기의 유입상황은 중국 전국시대 중만기의 기술적 전통을 가진 철기 문화의 영향, 낙랑 성립 이후 한나라의 철기 문화 유입을 통한 발전, 그리고 고구려 철기 문화의 전파 등 크게 3차례의 큰 변화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한반도에서 철기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세기경으로, 역사적으로 고조선 시기에 해당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당시 고조선은 동검문화가 발달한 청동기시대였으며, 이후 중국 동북지방으로부터 망명한 이주민인 위만집단에 의해 위만조선이 건국된 후 한반도의 대동강유역도 철기시대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후 위만조선은 동북아시아의 대표주자로서, 동아시아 여러 집단과 중국과의 교역을 독점하여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부를 축척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위협으로 인식한 한나라는 위만조선으로의 철기 수출을 제한 하였고,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이후 위만조선의 영토에는 ‘낙랑’이 설치됩니다.
낙랑은 중국의 한 무제가 위만조선(기원전 108년)을 멸망시키고 그 영역 안에 설치한 한사군 중의 한 곳입니다. 낙랑은 한때 25개 현을 거느린 큰 세력을 형성했으나 중국 본토 내의 정치적 혼란과 토착세력의 저항으로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으며, 이후 고구려와 백제가 강성해짐에 따라 낙랑의 세력은 더욱 축소되었고, 마침내 313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당시 낙랑의 철기들은 모두 단조품으로, 낙랑을 통해 들어온 이러한 단조기술은 한반도 토착사회에 영향을 주었으며, 곧이어 단조철기의 보급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한반도에 보급된 철기문화는 이후 고대국가 시기에 이르러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