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학습관

우리의 미래 철강이 만들어 갑니다.

잼있게 배워봐요

앤드루 카네기

철강에 관한 한 그가 왕이었다

ANDREW CARNEGIE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베세머가 강철 제련법을 발명하면서 철강업은 모든 산업의 기간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신흥 강대국인 미국에서 철강업은 빠르게 성장했는데, 여기에는 ‘강철왕’으로 불린 앤드루 카네기(1835~1919)가 버티고 있었다.

미국 제철업의 대부이자 성공한 자산가 그리고 훌륭한 자선사업가 이기도 한 카네기의 일생은 미국 제철산업의 성장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1835년 카네기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열 살 때 아버지의 방직 사업이 파산하면서 어린 카네기는 가난의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1848년 온 가족이 미국 피츠버그로 이민길에 올랐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카네기 일가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카네기는 열다섯 살에 주급 2달러를 받는 면직물 공장 직공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카네기는 낙천적이면서도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는 근면함으로 주어진 일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면직공장 직공과 전신국 배달원, 전신 기사, 철도회사 직원 등을 두루 거치며 승진을 거듭한다. 스물네 살에 카네기는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를 맡게 된다. 이 회사에서 카네기는 철강산업이 미래의 주력 산업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1873년 강철레일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카네기는 1886년 홈스테드 제철소를 합병했다. 홈스테드 제철소는 피츠버그의 주요 제강회사 대여섯 곳이 연합해서 세운 제철소로, 미국 최초로 베세머 제강법을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마침내 카네기는 홈스테드 제철소를 중심으로 석탄, 철광석, 철도, 선박 등을 모두 제조하는 카네기 철강회사를 일궈 냈다. 카네기 철강 회사는 당시 미국 철강 생산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이후 66세가 되던 해에 카네기는 자신의 회사를 4억 8,000만 달러에 모건 제강회사에 매각했다. 이로써 미국 철강 시장의 65%를 점유한 유에스 스틸이 탄생하게 된다.

카네기는 ‘철강산업의 미래는 밝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회사를 매각했을까? 그것은 부의 현명한 분배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66세에 일선에서 인퇴한 후 18년의 여생 동안 그는 도서관 건립, 카네기 기금 조성 등 각종 자선 사업에 주력했다. 뉴욕의 유명한 연주회장인 카네기홀, 공과대학인 카네기멜론 대학 등도 설립했다.

1919년 8월 11일, 카네기는 전 재산의 90%를 자선사업에 헌납하고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위대한 기업가, 강철왕, 멋진 자선사업가의 후회 없는 일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