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학습관

우리의 미래 철강이 만들어 갑니다.

잼있게 배워봐요

제임스 와트

산업혁명에 심장을 달다

JAMES WATT

어찌 보면 제임스 와트(1736~1819)가 증기기관을 만든 것은 제철산업의 발전이나 강철의 발달과 큰 상관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와트가 증기기관을 만들던 18세기 중반 유럽의 상황을 살펴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선 증기기관으로 인해 당시 영국에서 막 일어난 산업혁명의 속도가 빨라졌다. 산업혁명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제철업, 금속공업, 기계공업 등 철을 이용한 각종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증기기관으로 인해 증기기관차와 철도가 차례로 개발됐으며, 20세기 들어서는 자동차까지도 발명된다.

증기기관의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5년 미국에는 일종의 철갑선인 세계최초의 전함 ‘모니터’가 등장했다. 북군이 개발한 모니터는 해전에서 남군을 연전연파해서 북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인해 철의 역사는 새로 써지게 됐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증기기관을 처음 만든 사람은 와트가 아니라 토머스 뉴커먼(1663~1729)이다. 다트머스에서 철물상을 하던 뉴커먼은 1700년대 초 콘월 지방의 주석광산에서 물을 뽑아내기 위해 실린더 펌프를 사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콘월 지방에서는 말이 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비용에 대해 효율성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는 10여 년의 실험 끝에 1712년 초보적인 수준의 증기기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765년 조선소를 경영하고 각종 수학 공구를 제작하던 기술자 제임스 와트는 뉴커먼이 개발한 증기기관의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중작용 엔진으로 대표되는 몇 가지 개선을 거치면서 와트의 증기기관은 뉴커먼 방식보다 5배의 효율성을 갖게 되어 증기기관은 실용화의 가능성을 보였다.

1790년대 들어 증기기관은 단순히 광산의 물을 뽑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각종 공장과 산업시설을 가동하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와트는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권을 취득했고, 11년 동안 7만 파운드가 넘는 특허사용료를 받아 큰 부자가 됐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해 제철, 면직, 제지, 제분 등 전통적인 영국의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는 곧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뿐이 아니었다. 19세기 초에는 ‘달리는 강철 마차’ 증기기관차가 등장했다. 1825년에는 스톡턴과 다링턴을 잇는 철도, 1830년에는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가 잇달아 개설됐다. 이 모두가 증기기관이 일궈 낸 놀라운 변화였던 것이다.